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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설연화
작성일 2017-08-02 (수) 15:55
홈페이지 http://sichenji.com
ㆍ추천: 0  ㆍ조회: 53      
IP: 125.xxx.73
객관화란 무엇이고 어떻게 할 것인가
<시 입문을 위한 작법 강의 5>

▶ 객관화는 무엇이며 어떻게 할 것인가

시적화자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 시를 쓰는 사람들은 모두 시인이 쓴 시는 시인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아니 쓰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진실을 써야 한다는 생각 안에서 시를 쓰게 된다. 그래서 오늘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시인과 시적화자에 대해서 알아보고, 시적 진실과 현실의 진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시인과 시적 화자는 동일 인물인가.
시인과 시적화자는 같은 사람일까?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시인은 소설가와 같다. 주인공을 내세워 내가 하고자하는 말을 극대화 시키는 것일 뿐, 시인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시인의 이야기를 쓰면 잘못된 시일까? 그 또한 답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객관화된 자신을 쓸 수도 있다.

창작에 답은 없다. 다만, 독자들에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전달을 위해서라면 시인의 삶이 직접 시적화자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주인공을 내세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이것이 답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 예술의 논리이다. 또한 사람들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깨부시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그럼에도 시인과 시적화자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바로 객관화 때문이고, 시에서도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아주 오래전부터 시는 시인의 마음을 쓰는 글, 시인의 뜻을 전달하는 글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서 詩는 시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써야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예술에서 답은 깨져야 새로운 예술이 탄생할 수 있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나라에서 해체시가 시작되었다. 기존에 답이라고 생각했던 리듬감이나 은유적 표현으로 시인의 뜻을 전달했던 그것들을 모두 해체시킨다는 의미다.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틀을 만들어내는 해체시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인과 시적화자가 분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

1) 시인의 감성을 객관화 할 수 있다.

그렇다고 1980년 이전의 글들이 모두 시인과 시적화자가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 정지용의 시 ‘유리창’은 실제 아들이 폐렴으로 죽고 난 후 정지용의 슬픈 마음을 쓴 시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절제된 감정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객관화 시켰다고 볼 수 있다.  

유리창 1 / 정지용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니
길든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 이 시가 어떻게 아들의 죽음에 대한 시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선 시나 문학작품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삶을 조사한다. 그리고 주변 인물에 해서 알아보고, 그리고 그 시기에 쓴 작품(원전)을 살펴본다.

그 과정에서 아들이 폐렴으로 죽었다는 사실과 이 시의 마지막 2행에서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산새처럼 날아갔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로써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폐렴으로 죽은 아들을 생각하며 담담하게 슬픔을 그리고 있다고 분석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자식의 죽었음에도 슬프다거나, 고통스럽다거나 현실에서 표현할 수 있는 무거움은 없다. 시를 읽다가 보면 자신의 감정덩어리를 맑은 물에 한 번 씻어낸 후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감정을 빨랫줄에 널어놓고 그 얼룩진 슬픔 덩어리들을 멀리서 보고 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바로 객관화 과정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적 표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고 있다. 절제된 슬픔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에서 차고 슬픈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죽은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니
길든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이 표현은 아무런 기운도 없이 입김을 불어 넣으니 그 슬픔들이 유리창에 묻어나 ‘언 날개’ 죽은 아이가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표현에서 물 먹은 별은 어떤 별일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분명한 것은 별은 물에 젖을 리가 없다. 다만 물에 젖은 것은 시적화자의 눈이다. 즉 슬픔에 눈물을 흘리는 아비의 마음을 ‘물 먹은 별’ 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시인은 어떻게 이런 표현들을 쓸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감정의 객관화다.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객관화 시키지 않으면
‘보고 싶다, 슬프다. 가슴 저리다. 죽어서도 잊지 못한다.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 등등 그대로 가슴에 응어리들을 풀어낼 수밖에 없다.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한 번 씻어내고 그리고 차분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자신의 감정을 자신이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이 보는 것처럼 객관화시킨 것이다.

시인과 시적화가가 동일 인물인 경우이기에 감성을 객관화하지 않으면 좋은 작품으로 남는 것은 힘들다. 만약 정지용 시인이 이 글을 쓰면서 슬픔과 고통을 극대화해서 썼다면 이 작품이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는 좋은 시가 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면, 이글이 좋은 작품으로 남았던 것은 절제된 감정, 즉 자신의 감정까지도 객관화 시켜서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시를 쓰기 시작한 분들에게 권해보고 싶다. 지금 가슴 밑바닥에서 끌어 오르는 감성을 맑은 물에 헹궈서 빨랫줄에 걸어두고 그래도 얼룩져 남아있는 감성들을 찾아보는 것을 연습해 보라고.

2) 시작화자를 내세워 자신의 생각을 객관화 할 수 있다.

위에서는 시적화자와 시인이 동일인이었을 때 경우를 살펴보았고, 이번에는 시적화자가 소설의 주인공처럼 만들어진 경우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은 시적진실과 현실의 진실이다. 현실에서 진실이 아니라고 해서 詩가 거짓은 아니라는 것이다.

친일파 문인으로 유명한 서정주의 작품 중에 23세에 쓴 ‘자화상’이라는 작품을 살펴 볼 것이다.

자화상 /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풋살구가 꼭 하나  먹고 싶다고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이 작품에서 첫 줄을 살펴보자.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는 문장에서 우리는 서정주의 개인적인 삶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정주의 아버지가 정말 종이었는지, 일찍 죽은 것인지를 알아야 현실의 진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서정주의 아버지는 ‘종’은 아니었다. 서정주의 아버지는 고창 일대 지주의 ‘마름’이었다. 마름도 ‘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시에서 표현하는 것처럼 극심한 가난에 주인에게 부려지는 종이 아니라 현대적 의미로 푼다면 ‘집사’의 위치에 있었다. 지주의 마름의 권세는 지주보다 더 높았다. 마름의 말 한마디에 생사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정주는 애비는 종이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는 문장은 아비의 죽음을 의미한다. 풋살구 하나 마음 놓고 먹지 못하는 극도로 가난한 삶이 아니었음에도 아비는 없고 어미와 할매는 일하느라 손톱이 까만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도대체 서정주는 왜? 자신의 가족을 비참한 지경으로 표현하고 있을까? 그것은 아버지를 부정함으로서 자신이 고단하게 살았음을 표현하고 싶은 까닭이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이 표현에서 시인은 시적화자(주인공)을 통해 가난과 고난이 대물림되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생각해보라 아비는 죽었다. 외할아버지도 죽었다. 가난한 삶에 어디 손 내밀 곳 없는 처참하게 무너진 삶을 소설에서 한 장면을 묘사하듯 그렇게 서술하고 있다.

이런 표현들은 바로 다음 문장을 위해서 서술된 서두라고 할 수 있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즉 자신은 시련과 고난 속에서 성장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바람’은 고통과 고난을 상징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시인은 바로 이 문장을 위해 이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 한다해도 자신은 그 부끄러운 가난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즉, 사회적 존재로서의 주체적 삶을 자각하겠다는 태도다.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는 격정적 욕구와 생명에 대한 몸부림을 상징한다. 서정주는 자신의 자화상은 ‘병든 수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삶은 최선을 다하는 삶이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수능공부도 아닌데 시를 분석하는 이유가 있다. 이 작품의 한 줄 한 줄 표현에서 서정주는 객관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시적진실과 현실의 진실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서정주의 아버지는 ‘종’이 아닌 ‘마름(집사)’이었고, 그토록 가난하지도 않았으며,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뜨거나하는 불행은 없었다. 그럼에도 서정주는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거짓말일까? 문학작품으로서 가치가 없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문학’은 뜻의 전달이라는 것이다. 서정주는 자신은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삶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아버지를 부정하고, 가난한 삶을 살아야했고, 그리고 그런 삶을 부끄러워하기보다 주체적 자아를 가지고 사회를 향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현실의 진실과는 상관없다.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시인은 상상력이 동원되어야 하고 시적 화자를 내세워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또한 시적 화자를 내세움으로 인해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객관화’ 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신의 삶과 생각을 그대로 표현했다면 그저 푸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3) 객관화는 어떻게 연습할 수 있는가

‘문학’은 상상력이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쏟아내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동원되어야 하고,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그대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걸러내고 씻어 낸 후,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객관화 되어야 다른 이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질문이 생길 것이다. ‘객관화’는 어떻게 시키는 것인가. 방법은 연습이다. 그렇다면 그 연습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객관화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자기에게 직접 관련되는 사항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거나 생각하는 일.’이다. 즉 자신이 생각하는 것, 자신의 행동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제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연습하는 방법은 먼저 가장 쉬운 것부터 해 보는 것이다.
‘나는 지금 너무나 힘들다. 사람들은 나를 향해 손가락질 하고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떠들어 대고, 나를 편견으로 바라본다. 고통스럽고 힘겹다. 세상사는 것이 부질없이 느껴진다. 지금 밥을 입으로 넘긴다는 자체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현재 이런 감정으로 괴로움에 휩싸였다고 생각한다면 끔찍할 것이다. 그 상황이 되면 글을 쓸 엄두조차 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일단 저런 감정들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저 상황이 오기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먼저 보아야한다. 어떻게 해서 저런 상황에 올 수밖에 없었는지 근본적인 자신의 문제를 찾지 않는다면 푸념으로밖에 쓸 수없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글이다.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글로 묘사해보자. 누군가 그 글을 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버리고, 도덕적 관념, 개념 등은 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바로 자신의 모습을 제 삼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제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자신의 감정도 객관적인 입장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죽고 싶어하는 만큼 괴로운 원인이 있을 것이다. 만약 ‘어떤 소문’이 그 원인이라고 하면 소문을 표현할 수 있는 은유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비유적 표현으로 객관화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면
‘바람은 순식간에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곳으로
순간이동하는 바람은 매일 귓속에서 쟁쟁거린다.’

이렇게 소문에 대해 표현했다면, 그 소문은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에게 퍼졌고, 그 소문이 나에게까지 들렸을 때 나를 괴롭히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직접적으로 소문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바람’이 소문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문은 바람이다’ 즉 A=B다 라는 은유 공식이 성립되고 있다. 이렇게 은유적인 표현으로 상징을 만들어서 쓸 수 있다. ‘나는 괴롭다’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고, 제 삼자입장에서 그 괴로움을 표현해야 한다.

‘매일 들려오는 소문들.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찌른다. 이 고난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해버리면 정말 푸념이 되고,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벗은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게 된다. 은유, 비유, 환유, 제유, 이미지, 상징, 역설, 아이러니 기타 등등의 표현들은 바로 그 벌거벗은 몸을 가리는 방법 중에 하나다.

벌거벗은 감성에 옷을 입히는 방법은 이미 그 방법을 오래전부터 사용해서 좋은 시를 썼던 선배들의 작품을 많이 읽고, 그리고 옷을 입을 방법을 많이 생각해보고, 그리고 많이 써보는 것 말고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 자신과의 싸움이며 연습만이 벌거벗은 감성에게 옷을 입혀 줄 수 있을 것이다.

<숙제>
아주 쉬운 것부터 객관화 연습을 해 보기 바란다.
시를 쓰기 시작하는 처음은 모두 사랑시를 쓴다. 그리고 ‘사랑해’라고 직접 뱉는다. 그렇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인가. 어떤 감정일 때 사랑이라고 하는가에 대해서 써보기 바란다. 내 안에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객관화 시키는 연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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