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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화의 문학-수필   하루의 행복
일상생활의 잔잔한 이야기와, 생활글, 그리고 시사에 관련한 생각들.
올해는 좀 더 많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작성자 설연화
작성일 2010-01-27 (수) 16:54
홈페이지 http://sichenji.com
ㆍ추천: 0  ㆍ조회: 1716      
IP: 220.xxx.26
어머니의 겨울
 

어머니의 겨울

        설연화



올해는 유난히 추울 것 이라는 기상예보와는 달리 아직 큰 추위는 몰아치지 않고 있다. 눈이 많이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도 말짱  거짓말인 모양이다. 올해 들어 첫눈만 한번 슬쩍 날리고는 아직 눈다운 눈은 오지 않았다. 날씨가 그나마 겨울이라고 아우성치는 듯 좀 추위가 느껴지기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의 가쁜 숨소리가 들려왔다.

“겨울 되니까 또 엄마 숨소리가 거칠어 지셨어요.”

“어쩌것냐 평생을 이렇게 살았는디, 그래도 인자는 쪼깜 나서야”



매해 겨울만 되면 부엌에서 쓰러져서 피를 토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있다. 어머니의 겨울은 잔기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문이 있지만, 구멍이 숭숭 뚫린 틈으로 눈발이 날리는 부엌이었다.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그 부엌에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큰 걱정거리가 되지는 않았다. 매해 보는 모습이었고, 그것이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매 끼니때 마다 손안에 가득담긴 이름 모를 약을 드셨다. 너무 많아서 저 약들이 한꺼번에 넘어갈까 싶을 때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물 한 모금에 그 많은 약을 꿀꺽 삼키시곤 했었다.

한 동안은 병원에서 어머니께서 폐결핵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족들과 따로 생활하지도 않으셨고, 약의 가짓수만 더 늘었던 것 밖에는 없었다. 어머니는 독한 약을 계속 드시면서도 기침은 여전했고, 피를 토하는 것도 여전했다. 결핵약을 드시면서도 연기가 많이 나는 생솔가지로 군불을 지피면서 또 기침을 시작하셨다. 한번 시작한 기침은 숨이 끊어질 듯이 미치도록 하다가 지쳐서 쓰러져야만 멎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을까? 그해 유난히 눈이 많았고, 춥기도 했었다. 12월이 되면 어머니는 집에 계시는 날보다 일을 하러 가시는 날이 많았다. 무 작업이라고 해서 김장거리며 겨울에 내다 팔아야 하는 무를 땅속에 묻는 작업을 다니셨다. 가끔은 묻었던 무를 꺼내는 작업을 봄까지 하곤 했었다.

그 해 어머니는 심한 관절염에 시달리고 계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관절염이다. 하지만 그때는 무릎이 펴지지 않는 병이라고 했었다. 화장실에 볼일을 보실 때도 엉거주춤한 자세였다. 가끔은 화장실을 다녀와서 속옷과 바지를 갈아 입으셨다. 뿐이던가, 부엌에서 불을 지필 때도 설거지를 하실 때도, 언제나 엉거주춤한 자세였다. 그런 어머니께서 무 작업을 나가시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못마땅하신 듯 화를 내셨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이따가 엄니 오면 뻔해야, 나가 누구 땀시 이 생고생을 허는디 시방 느그들은 놀고만 자빠젼나 험시로 또 잔소리 허꺼시여. 누가 일가라고 했간디?”

셋째오빠의 투덜거림이었다. 나 또한 오빠의 그 말에 동조를 하곤 했었다. 그래도 어머니가 집에 계시지 않는 날은 좋았었다. 잔소리 하는 사람도 없었고, 저녁때가 되어 밥만 해 놓으면 큰 탈이 없었다. 물론 어머니가 귀가를 하시면 또 매일 듣는 소리를 반복해서 들어야 하지만, 그것도 11살쯤 되었을 때는 만성이 되어버렸었다. 언제나 듣는 노랫소리처럼, 그렇게.......



그날 밤 어머니는 꽤 늦은 시각까지 돌아오지 않으셨다. 저녁을 모두 먹고 난 뒤에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으셨고, 아버지는 대문 밖에서 개들이 짖는 소리만 들려도 시선을 대문으로 향하곤 하셨다. 두꺼운 솜이불을 가운데 두고, 여섯 식구가 이불속에 몸을 넣고 발장난으로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10년 넘게 입어 낡아버린 점퍼를 들고 밖으로 나가셨다. 해질녘이면 돌아오시던 어머니께서 밤늦도록 오지 않으셨던 탓이리라. 난 그때 처음 어머니를 걱정하시는 아버지를 보았다. 안절부절 어찌 할 줄 모르시는 아버지의 그 커다란 눈망울에 걱정이 서려 있다는 것을.......



멀리서 어머니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대문에서 기다리시던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의 기침소리가 들리자 방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누우셨다.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다들 추워서 문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워매, 내가 미쳤지야. 워치케 지그 엄니가 왔어도 문 한나 열어본 새끼가 없구마잉. 허미 저 넘들을 믿고 내가 워치케 살끄나? 어매, 참말로 무정허시. 뼈 빠지게 일 해가꼬 먼 덕을 보것다고 내가 요로코 산가 모르것당께. 부모 복 없는 년이 남편복은 있을 거시여? 자식복이 있을 거시여. 어매 염병헐놈에 팔자여”

그때서야 큰오빠가 속옷 바람으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마루도 아닌 토방에 푹석 앉아 계셨다. 당신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고 계셨다. 아버지는 큰 기침만 두어번 하시더니 부엌으로 나가 군불을 지피셨다. 어머니가 씻으실 물을 데우고 계셨다.



난 어머니께 뛰어가 아버지가 대문에서 기다리셨다는 걸 이야기 해 드리고 싶었다. 울고 계시는 어머니께 위로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흙투성이 눈물범벅이 된 어머니께 차마 다가갈 수가 없었다. 아직 어린 막둥이만 어머니 품에 안겨 칭얼거렸다. 오빠들은 슬슬 눈치를 보며 작은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난 머뭇거리며 어머니 곁에 서 있었다. 어머니께 뭔가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았다.

그때였다. 부엌에서 아버지께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마다, 언능 느그 엄니 밥 차려 드려라잉”

어머니는 그때서야 토방에서 일어나려 하셨다. 하지만 무릎이 펴지지 않으신지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무릎을 구부릴 수도 펼 수도 없는 고통.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난 알지 못했다. 다만 어머니께서 엄살이 심하신 것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씻고 저녁을 드신 어머니는 그날 받아 온 일당을 곱게 펴서 다락방 틈에 끼워두셨다. 언제나 그곳은 어머니의 문갑이었다. 그때 난 보았다. 달랑 오백 원짜리 지폐 한 장 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을. 어머니가 받아 온 일당을 넣었을 때, 천 원짜리 몇 장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머니는 밤새 끙끙 앓으셨다. 쉑쉑거리는 숨소리가 고르다고 느껴졌을 때, 어머니는 벌써 부엌으로 나가고 계시지 않았다. 연신 들려오는 어머니의 기침소리가 자장가처럼 흐느적거릴 때, 오빠들의 부산함이 들려왔다.

“엄마, 저 차비 주세요.”

“엄마, 나 공책 사야 되는디요.”

“엄마, 나 모래까지 앨범비 내라고 허는디요.”

큰오빠는 학원생, 둘째오빠  고등학생, 셋째오빠 중학생, 나 초등학생이었다. 사남매가 매일 가져가는 돈은 그리 적은 돈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겨울에는 일거리도 없었고, 쌓아놓은 벼 가마는 추곡수매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해였다. 그래서 가용으로 사용되는 현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웠던 것이기에 어머니는 불편하신 몸을 이끌고 매일 일을 나가셨던 것 같다. 그해 겨울 어머니는 단 하루도 집에 계시지 않았다. 우리들이 겨울방학을 했을 때도 어머니는 매일 다른 일거리를 찾아 들로 산으로 나가셔야 했었다. 그렇게 억척으로 사셨던 어머니가 계셨기에, 철없던 우리들은 그나마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쯤이었다.



그때는 왜 그 고통을 안고서도 일을 하러 나가시는 어머니에 대해 그렇게 매정했을까. 아니 매정하다 못해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어머니의 성난 목소리만 지겹다고 느꼈을 뿐.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가난하고 거친 세상의 시름을 자식들에게 품는 희망으로 위로를 삼곤 하셨던 것 같았다. 그것이 채워지지 않을 때는 언제나 하소연처럼 잔소리를 하셨던 것이다.



그날 어머니의 피 끓는 절규를 난 왜 그저 엄살로만 받아 넘겼을까. 철없는 나이였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어머니의 그 절규가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것을. 지금 내 나이보다 조금 더 많았던 어머니의 나이. 그때 내가 그 상황에 접해져 있다면, 난 어머니처럼 그렇게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 철없는 자식들과 무심하리만큼 무뚝뚝한 남편, 그리고 가난! 이런 것들을 숙명으로 알고 사신 어머니를 이제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그 심정을 이제는 가슴 저리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전화기를 붙잡고 어머니와의 수다는 조금 길어졌다. 요즘 들어 부쩍 외로움을 많이 느끼시는지 어머니는 전화 통화하는 것을 꽤 좋아하셨다. 아이들의 안부를 묻고, 또 오빠들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어머니는 간간히 기침하시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아참 엄마, 내일 택배 도착할 텐데.”

“뭐를 또 보냈냐?”

“아니 그냥 겨울 점퍼 괜찮은 게 있어서 두 분 따뜻하게 입으시라고 보냈는데.”

“근디 어찌끄나? 내일 나도 무시작업 가야대고, 느그 아부지도 광주 나가실 일이 있다고 허시든디?”

“엄마 무 작업 아직도 다녀요? 이제 매일 돈 가져가는 사람도 없는데 칠순 넘으셔서 뭐 하려고 다니세요.”

“아따 어쩌것냐, 일손이 없다고 하루 와서 해달라고 허는디.”

“그거 가셔봐야 몇 푼 안 되고, 고생만 되시잖아요. 아직도 기침 하시면서.”

“놀믄 뭐헌다냐? 가서 일 혀주믄 그 사람도 일 손 있응께 좋고, 나도 돈 번께 좋제 어째야, 동네 사람들은 못가서 안달인디... ”

어머니는 웃으며 농담처럼 말씀 하셨다. 하지만 유년의 기억 속에 무 작업 가셨다가 돌아오신 어머니의 절규가 남아 있어서 일까. 무 작업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그때 어머니 모습이 떠올라 철없던 내 모습이 부끄러움으로 남는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미움의 근원이었고, 아픔의 근원이었던 어머니. 하지만 이제 칠순을 넘기신 어머니를 뵐 때마다 철없는 나 때문에 오히려 상처 받으셨을 것을 생각하면 눈물만 흐른다.



어머니의 겨울은 언제나 핏빛 노을 진 산등성이였다는 것이 언제까지 잊혀지지 않는 풍경화로 남을 것 같다. 이제는 웃고 계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편안함이 묻어 있다는 것에 감사를 하며 어머니를 조용히 불러본다.

사랑하는 내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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