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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화의 문학-수필   하루의 행복
일상생활의 잔잔한 이야기와, 생활글, 그리고 시사에 관련한 생각들.
올해는 좀 더 많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작성자 설연화
작성일 2014-06-27 (금) 01:34
홈페이지 http://sichenji.com
ㆍ추천: 0  ㆍ조회: 387      
IP: 220.xxx.26
백발의 모녀로 살 수 있기를
     백발의 모녀로 살 수 있기를.

      설연화

전화기 사이로 목소리보다 더 크게 쎅쎅거리는 천식 앓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의 소리다. 어릴 적부터 들어오던 소리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 한 켠이 저려온다. 유년시절부터 앓아왔던 천식이 팔순이 되시면서 점점 심해져서 이제는 잠깐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하신다. 작년 시월 아버지 생신 때부터 병원 입, 퇴원을 반복하시더니 이제 그냥 집에 계신다. 설날 찾아뵈었을 때도 여전히 어머니는 잠깐의 움직임도 힘들어하셨다. 일어나서 움직이는 시간보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힘드시면 다시 눕는 어머니를 보며 가슴이 무너질 듯 아파온다.

설을 시댁에서 보내고 당일 날 친정에 오는 친구들과 동창 모임을 했다. 처가에 가지 않고 집에 있는 남자 동창들도 몇 몇 얼굴을 비쳤다. 그중 한 친구가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평소에는 기운 없다. 아프다. 힘들다. 이제 죽을 때가 됐나 보다. 하시면서 하지 말라고 극구 말려도 노인 일자리에 나가신다며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노인 일자리 나가신 것은 몇 년 전이다. 그때 어머니는 그러셨다.
“나보다 더 젊은데 돌봐주는 사람도 없고, 참말로 불쌍하더라. 거기에 비하면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냐”
그때는 행복하셨다. 그것을 바라보는 나 또한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잠깐의 움직임도 여의치 않아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더 많으신 어머니. 친구의 어머니와 내 어머니는 동갑이셨다. 같은 나이임에도 노인 일자리를 나가시고, 산에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시고, 밤을 줍기도 하고, 정말 건강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빤히 그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건 네가 복 받은 거야. 우리 어머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너희 어머니랑 같이 노인 일자리에서 병 간하는 거 하셨잖아. 지금 우리 어머니는 병원에서 지내는 날이 더 많으셔”
그러자 내 앞에 있던 친구가 한마디 건넸다.
“둘 다 복 받은 거다. 난 어머니도 5년 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작년에 돌아가셨잖아. 난 고아다.”
“그럼 누가 제일 복 받은 거냐?”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누군가 소리쳤다.
“양 부모님 살아계시고, 건강하셔서 가끔 몫 돈도 쥐여주면 그게 제일 복 받은 거지”
다들 공감하는 눈치였다.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부모님과 함께 늙어갈 수 있고, 부모님이 날 보살폈듯 내가 보살펴 드릴 수 있으면 그게 복 아닐까?”

부모님에 대한 마음은 누구나 애틋하다. 하지만 진정한 마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개인주의에 점차 물들어 가며, 누군가는 존속살해를 하고, 누군가는 부모를 때리고, 누군가는 부모를 자식을 고소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제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두 분 다 살아계신다는 것이 복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하지만 옆에 앉아 있던 친구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내가 늙어 내 부모님의 나이가 되면 내 아이들은 내 나이쯤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 부모인 나는 내가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행복할 것이고, 아이들은 함께 늙어가며 서로 아끼며 의지할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신다는 것이 행복할 것이다. 지금 나의 부모님도 함께 늙어갈 자식이 곁에 있음을 바라지는 않으실까? 이제 힘에 부쳐 농사일도 거의 손을 놓은 상태. 겨우 밭농사만 소일거리로 하시며 자식에게 채소라도 보내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이제 그것도 못할 것 같아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어머니.

가끔 어머니를 바라보며 내 자식을 생각해 본다. 나도 어머니에게는 내 아이만큼 귀한 딸이었을 것이다. 기침 한 번 하면 가슴이 아려오고, 힘들어하면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가 더 아픈 귀한 자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어머니에게 원망을 가슴에 품고 살지 않았던가.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묶여 다 해주지 못했을 뿐인데, 그때 어머니의 마음은 더 아프고 현실이 원망스러웠을 터인데 난 어머니를 미워하며 가슴에 응어리를 남기고 아직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건네지 못했다.

딸아이는 가끔 ‘엄마, 사랑해’라며 가슴에 안기곤 한다. 아들 녀석도 자주 끌어안으며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나는 내가 아이들에게 느끼는 행복을 어머니께 전해드리지 못했다. 항상 웃고 계시는 아버지께 전해드리지 못했다. 누군가의 바람처럼 내 부모님이 건강하셔서 나에게 가끔 목돈을 쥐여주고, 재산 한밑천 주었다면 행복했을까? 부모님이 존경스러웠을까? 설사 그런다 하더라도 마음은 무거웠을 것 같다. 언제까지나 자식에게 희생만 해야 하는 부모라는 이름이 아픔이었을 것 같다.

각자 부모님 이야기에 친구들이 모두 눈시울이 붉어진다. 각자의 사연으로 부모님과 이별하고, 함께하고, 모두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까지나 함께하실 것 같았던 부모님이 계시지 않기에 이제 곧 이별을 준비해야 하기에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좀 일찍 집으로 돌아오며 여전히 기침하며 숨차하시는 어머니의 숨소리를 듣는다. 유년시절 지겹다는 생각을 했던 그 숨소리. 쎅쎅이는 천식 앓는 소리에 오늘도 안도의 숨을 쉬어본다. 아직은 곁에 존재하시기에 희망이라도 있음을 이제는 안다. 백발의 어머니와 백발의 딸이 함께 늙어갈 수 있다는 희망이 아직 존재하기에.

어머니의 전화는 길어졌다. 큰 오빠, 둘째 오빠 이야기다. 그 목소리에 기운이 없다. 어머니의 행복은 아들이었고, 아들이 곧 힘이었다. 지금은 두 아들이 어머니 가슴에 비수를 꽂고 있기에 아프신 것은 아닐까? 이제는 희망해 본다. 놓을 것은 놔 버리고, 행복한 웃음으로 딸과 함께 백발로 늙어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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