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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화의 문학-소설   창작소설
10여년만에 다시 시작하는 소설입니다.
습작이라서 서툴지만 시간나는대로 꾸준히 써볼 생각이랍니다
작성자 설연화
작성일 2018-02-05 (월) 13:40
홈페이지 http://sichenji.com
ㆍ추천: 0  ㆍ조회: 39      
IP: 121.xxx.85
장편소설 은파 3-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
장편소설
은파

3.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

그녀의 방은 며칠째 불이 켜지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도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그녀를 처음 보았던 카페에서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마을에서도 그녀의 흔적은 없었다. 1층 박 씨를 따라 옥구, 성산, 나포, 오식도 등 군산 지역에서도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근교 농촌 마을을 비롯해서 멀리는 금산까지 다녀왔다. 일은 단순한 육체노동이었다. 그가 미리 주문한 농산물을 차에 싣고, 내리고, 경매가 끝나면 다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일이었다. 박 씨의 배려로 월요일과 목요일은 강의에 나가고, 토요일은 쉬었다. 대신 일요일은 그를 따라 충청남도, 전라남도까지 떠돌아다녔다. 오히려 승혁에게 더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교육원에서도 이미 소문이 돌았다. 수강생들은 하나둘씩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정원을 넘어 30명이 넘던 학생이 2주 만에 스무 명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수강생은 역시 집 근처에 사는 아줌마 수강생들이었다. 주인 노파가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것 같지만, 다들 믿지 않은 눈치였다. 일주일에 이틀은 집에 있을 수 있어서 항상 옥탑방을 주시했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전라남도 함평에서 고구마를 트럭에 가득 싣고 군산으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박 씨는 머뭇거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우리 애 엄마가 좀 시끄랍제? 내가 허튼소리 허덜말고 잠자코 있으라고 말해도 이 여편네가 말을 안 들어 처먹어. 작년에 그 치도곤을 당하고도 아즉 정신 못 차렸당께"
"제 일이야 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요. 소문이 무성한 만큼 금방 잊힐 테니까요. 그런데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나야 배운 것도 없고, 무지렁이라서 선생한티 답해 줄 것이 있을랑가 모르것네?"
"아니 집주인 아주머니도 그렇고, 형님도 그렇고 작년에 일이라고만 하셔서, 그게 무슨 일었는지 궁금해서요. "
"음마? 생전가야 사람들한티 궁금헝 것도 없고, 관심도 없고, 말도 잘 안하드만, 뭔 일이당가? "
"다들 저와 비교를 해서 말하는 것 같아서요. 지난 월요일 아침 수업 때도 한 아주머니께서 다른 아주머니께 그러시더라고요. 작년에도 사람 죽일 뻔하더니, 또 그럴 거냐고."
"뭐 사람들 말 때문이었것어? 이래저래 의지할 곳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불고, 믿었던 남편한티 배신 당허고, 엄니마저 세상 떴으니, 사람들 말이 아니어도 살 수 있는 희망이라고는 없었제. 자식새끼가 있어서 이 앙당물고 살 것이여. 글타고 부모가 있어서 의지하고 살 것이여? 세상에 발가벗겨서 버려진 것 같았것제."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집 쥔 여자 말여."
"한 번도 뵌 적 없는 것 같은데요?"
"왜에? 우리 집 옥탑방 말여. 지 어미 살았던 2층은 지금도 절대 문 열고 못 들어가제. 지가 엄니 죽인 것 같다는 죄책감이 아즉 남아 있는 모양이여. 허긴, 우리 집에서 보이는 그 빌라들 중 몇 개는 그 아줌씨가 짓고, 샀던 건물들인디 하루아침에 죄다 사위 목구멍으로 넘겨부렀응께. 그라고 딸 이혼한 지 얼마 안 되서 죽어부렀응께 지 땜시 죽었다고 생각허것제. 지나가는 거지한테 돼지고기 한 점은 줘도 아짐 목구멍에는 개기 국물 한 방울도 아깝게 생각했던 아짐이었응께."
"옥탑방 여자가 주인이었어요?"
"응, 그라제. 작년에 이혼하고 내려왔는디, 아짐이 췌장암 말기로 얼마 안 있다가 죽었구먼, 근디 동네에는 에미 돈 갖다가 젊은 놈하고 바람나서 이혼당했다는 둥, 젊은 놈 애새끼를 가져서 이혼당했다는 둥,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제. 여편네들 시기였것제. 동상도 봐서 알것제? 우리 애 엄마랑 두 살 차인디, 겁나 젊어 보이제? 거그다가 지금이야 저리 초라한 몰골로 산송장이제만, 꾸며 놓으믄 겁나 이쁘당께. 글다가 봉께 동네 여편네들 시기심, 질투심이 헛소문을 맹근 것이제. 나도 항상 쥔 여자 보면 죄인인 것이 그 소문의 근원이 우리 애 엄마여. 우리 집 여편네는 아니라고 딱 잡아떼기는 허는디, 내가 모르것어? 근디, 성주 아짐이, 아, 자네 집주인 말여. 성주 아짐이 소문이 진짠 줄 알고, 퍼 붓어 댓제. 근디, 나중에 쥔 여자 일 봐주는 성만이가 성주 아짐한티 글더만, 죽으려고 낭떠러지 서 있는 거 델꼬왔다고, 안 죽어서 서운 허냐고, 죽어야 속 시원허것냐고. 성주 아짐도 진심이었것어? 몇십 년을 동거동락허다시피 삼시러 성님, 동생 험서 살던 동기간 같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세상 뜨니께 분한 마음에 헌 소리제."
승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인이 틀림없다. 그 묘한 이미지는 그날 밤 절벽에 서 있던 여인과 하나로 합쳐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리 쉬었다. 박 씨는 우직한 사람이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겨우 한글을 깨우쳤지만, 잠깐 시간이 나면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가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그에게 묻기도 하고, 영어로 된 문장의 해석을 묻기도 했다. 말이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질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은 모두 말했고, 필요치 않은 말은 꺼낸 적이 없었다. 고창 휴게소에서 커피를 한 잔씩 들고 트럭에 앉았다. 군산에 도착하는 동안 둘은 말이 없었다. 승혁은 그녀 생각에 골똘해 있었고, 박 씨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심취해있었다. 군산에 도착했을 때, 승혁은 그녀의 차가 바깥쪽에 주차되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 형님, 제 차 좀 중고시장에 내다 팔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이곳에서 당분간 차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서요. 생활비에 보태기도 해야 할 것 같고요."
"그래도 선생인디, 차가 안 필요 할랑가?"
"학교도 걸어서 20분이면 도착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번 학기 끝나면 다음 학기 가능할 지도 모르겠고요. 형님이 괜찮으시다면, 당분간은 형님이랑 같이 일해도 될 것 같고요."
"나야 좋제, 이제 봄이라서 쪼감 한가하기는 혀도, 4월부터는 집에 들어오기도 힘들당께. 하여튼 간에 차는 내가 얼른 알아봐 줄게…. 얼래리? 쥔 여자 나왔는 갑네? 낼이 아짐 돌아가시고 첫 생신이라서 긍가? 저 산송장이 언제나 웃을랑가 모르것어. 옛날에는 겁나 까불이였는디…. 어이 동생, 낼은 쉬고 모레 새벽에 보드라고."
"예 형님. 쉬세요."
승혁은 옥탑방을 올려다보았다. 옥탑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좁은 고샅길을 지나 숲길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정자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뿌옇게 먼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다르게 깨끗하게 닦여 있는 정자를 보며 승혁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승혁은 자신의 몸에서 나는 끈적한 땀 냄새에 고개를 저었다. 땀 냄새에 파스 냄새까지 섞여서 고약했다. 사실 처음 해보는 육체노동이었다.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고도 몸이 일으켜지지 않을 정도로 고단했다. 씻지도 못하고 나가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처음에는 박스를 제대로 들지 못해서 쏟아지기도 여러 번이었지만, 박 씨는 웃으며 요령껏 드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농산물이라서 그다지 무겁지는 않았다. 물론, 고구마나 호박은 자루에 담겨 그 무게가 상식을 뛰어넘기도 했지만, 한 번은 거뜬히 들 수 있었다. 그러나 무한 반복이 함정이었다. 들쑥날쑥한 짐을 등에 지고 트럭까지 수십 번 오가야 하고, 또 올린 만큼 내려야 하는 작업이 녹녹하지만은 않았다. 처음 따라갔던 날은 서너 박스 옮긴 것뿐인데, 온몸을 누군가에게 밤새 두들겨 맞은 것처럼 다음 날 자신의 몸이 자신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2주 동안 같은 작업을 반복하다가 보니, 근육도 적응이 된 모양이다. 조금은 가뿐하다.
그는 자신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가장 먼저 창문을 열었다. 꼭꼭 닫혀있지만, 그녀의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유리창에 그림자로 그녀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안정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설렘도 있었다. 그녀가 그 여인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녀가 활기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지금은 그녀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창문에 비치는 그림자, 그녀는 지금 책상에 앉아 무엇인가 열심히 쓰고 있다. 그것이 일기인지 가게부인지는 모른다. 무엇인가 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승혁은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를 들었다. 피식 웃었다.
'호기심이지. 이 설렘은 호기심이야. 사람에 지쳐 있는 내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관심."
승혁은 욕실로 들어가 물줄기에 몸을 적셨다. 이대로라면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군산에 이사 오던 날, 노교수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그녀가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엇인가 열심히 바라보다 낙서를 하는 듯 뭔가 끄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노트를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고, 한참 동안 노교수와 이야기를 하다 일어섰을 때, 탁자 위에 놓인 종이를 발견했다. 몇 줄 읽다가 무심코 코트 주머니에 넣었던 것이 떠올랐다. 승혁은 대충 비누 거품을 씻어 내고 자그만 옷장을 열어 코트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주머니에 구겨진 메모지가 손에 잡혔다. 그는 바쁜 시선으로 글씨를 읽어 내려갔다.
"싸늘한 시선이 품은 씨앗은 날 선 칼날이 되어 지친 영혼의 살점을 찢는다. 돌아갈 곳이 없는 지친 발걸음은 텅 빈 고요의 칼부림에 벌거벗은 살점을 떼어낸다."
그녀의 마음은 칼날 위에 서 있다. 아직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매일 그 사람들의 시선과 침묵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사람들의 오해는 풀렸다고는 하지만, 그녀의 가슴에 꽂힌 칼날은 여전히 선혈을 흘리며 그녀 안에 고여 있었다.
승혁은 무심결에 책상을 찾았다. 두리번거리던 승혁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다. 텅 비어 있었다. 옷장을 열었다. 양복 한 벌, 셔츠가 둘, 코드 하나, 운동복 두어 개와 티셔츠 몇 장, 그리고 속옷 몇 장이 전부였다. 그리고 방안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다. 주머니를 뒤적거렸지만, 펜 하나가 없었고, 시인이라는 이름도 사라진 지 오래다. 승혁은 중얼거렸다.
"2주 동안 난 무엇을 강의 한 거지? 첫 시간은 어차피 무성해질 소문을 미리 말해 버렸고, 두 번째 시간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등학생 수업하듯 수업한 것인가? 이런…."
그는 핸드폰을 꺼내 메모장을 열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열심히 메모 한 후 이불장에서 이불을 꺼내 자리를 폈다. 이불마저 쥔 노파가 건네준 것이었다.
"내일은 아주머니께 쓰지 않는 책상을 부탁해 봐야겠어. 노트북도 필요하겠지? 할 거라면 제대로 하자. 그래 세상의 편견은 그대로 두자. 내가 소리 지를수록 더욱더 편견은 심해질 테니까. 교수님이 그랬던가? 기다리는 용기를 가지라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승혁의 중얼거림은 어느새 거칠게 내쉬는 코골이로 변해 있었다.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절망에서 희망의 빛이 일렁이듯 은파 호수에서 은빛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다.

저녁 수업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새벽에 박 씨를 따라 농산물 시장 경매장에 다녀온 후 승혁은 주인집 창고에서 먼지가 쌓인 책상과 의자를 창문 옆에 두고 먼지를 닦아 냈다. 의자에 앉아 창문을 열 수 있고, 바라볼 수 있게 위치를 선정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녀의 방 창문을 한눈에 볼 수 있고, 그녀가 옥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도 볼 수 있는 위치였다. 뿐이던가, 고개를 내밀면 고샅길을 볼 수 있었고, 고개를 내민 상태에서 조금만 옆으로 돌리면 나무 사이에 가려진 정자가 어렵게 보이기도 했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섰다. 노트북이 필요했다. 그의 본업은 교사였지만, 또 다른 직업은 시인이었다. 그리고 도전할 것이 생겼다. 언론이 하지 못한다면 문학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을 생각이었다. 그것이 몇 년이 걸려도 상관없었다. 세상에 부당하게 사는 사람이 그 한 사람뿐 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원망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도 그랬다. 다른 이의 부당함을 침묵하고 살았다. 발설함과 동시에 받게 될 또 다른 부당함. 그것이 두려웠기에, 다른 교사가 어처구니없이 해고당할 때도, 학생들이 교장에 대해 고발했을 때도, 그저 침묵했다. 그 침묵의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수혜의 잘못도 아니고, 재단의 잘못도 아니고 언론의 잘못도 아닌, 잘못된 세상을 바라보고 살면서 침묵해버린 문인의 죄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낙서 같은 메모를 보며 승혁은 생각했다. 그 편견의 시선에 살점이 찢기는 것을 묵인하고 침묵한 죄인이 당신 곁에서 당신처럼 살점이 뜯기는 중이라고. 이젠 세상을 향해 침묵하지 않고 칼보다 무서운 펜을 움직일 때라고….
승혁은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한 번도 써보지 않았기에 작법을 우선 공부해야 하고, 습작이 필요하고, 진정 필요한 소설을 쓸 수 있을 때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그 긴 투쟁을 시작하겠다는 다짐의 미소였다.

노트북을 사서 들고 들어오는 길목에서 승혁은 그녀와 마주쳤다. 옆에는 카페에서 보았던 사내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그날 밤의 모습과 흡사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문에 서서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 뒤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집 주변에 있는 상가 여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산송장이라는 별명이 딱이여. 눈동자에 초점이 없당께. 오늘이 아짐 생일이라제?"
"그래도 어디유? 올해 생일은 그리도 애지중지 아끼던 딸이랑 보냈으니…. 죽은 뒤에 저리 울면 뭐하누. 그러니 살아 있을 때 좀 찾아오지."
"남편이 싫어 했데잖어. 의사랑 간호사가 눈 맞아서 결혼하기는 했는데, 간호사 마누라가 창피하다면서 집구석에서 꼼짝도 못하게 했다면서? 시어머니가 친정집 나들이하는 걸 그리도 싫어했다데?"
"시아버지, 시어머니 모두 의사였다더만, 거기다가 시누이가 하나 있는디, 그것이 또 검사라나 변호사라나? 그 남편은 대학교 교수고…. 그라니 그 잘난 집안에서 을매나 고단했것어 시집살이가."
"그것은 핑계여. 지그 엄니가 누구 땜시 악착같이 폐지까지 주워감서 억척을 떨었간디. 하나밖에 없는 딸년 땜시 아니었것어?"
"성희 엄마야. 아직 2층은 문 안 열었제?"
"아직…. 내가 우리 쥔 여자 웃는 것을 봐야 좀 안심이 되것는디, 그래야 죄책감 같은 것이 쬐금은 사그라질 것 같은디, 아즉 2층 문을 못 여는 것을 보믄 살 생각이 안 드는 갑서."
"저럴 때 어떤 사내가 나타나서 마음을 좀 흔들어 놓으믄 좋을 것인디."
"미장원 여편네야. 너 같으믄 저 정신에 연애 허것냐? 죽고 못 살아서 주변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남편도 딴 년 좋다고 마누라 내팽개치고 갔는디, 어느 사내한테 정이 가것냐? 그것 뿐이여? 어찌보면 사내 하나 잘 못 만나서 엄니 죽인 거나 다름없는디…."
"그라긴 혀. 뭔 놈에 팔자가 저렇게도 사나울까. 정 줄 새끼 하나 없고, 믿을 만한 사내새끼 하나 없고, 고향이라고 내려왔더니, 다들 죽일 년 취급이나 허고, 아이고 나 같어도 맨정신으로는 못 살긋다. 성만이 아니었으믄 저 여편네 진작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여."
"동기간처럼 챙겨주는 어린 성만이라도 있으니께 다행이제. 그것도 없었으믄 어디다가 정 붙이것어. 요 며칠 또 방구석에 처박혀서 먹지도 않고, 잠도 안 자는 것을 성만이가 석고대죄라도 한 것처럼 매일 매일 찾아와서 귀찮게 허니께 저 문이 열린 거 아녀. 혹시 성희 엄마 또 초란이한테 뭔 소리 했냐?"
"왜 또 나한테 지랄이여. 난 암말 안 혔어. 또 주댕이 방정 떨었다가는 성희 아부지한테 맞아 죽을 것이여."
승혁은 동네여자들의 수다를 듣고 있었다. 초란. 그녀의 이름인 듯했다. 대문에 기대어 여자들의 수다를 듣고 있을 때, 주인 노파가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으로 나왔다. 그가 묵례하자 받는 둥, 마는 둥 옆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 2층 앞에 서서 옥탑방을 향해 소리 질렀다.
"초란아, 나 성님한테 절 좀 할랑께 여그 문 좀 열어라잉!"
옥탑방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한참 지나자 사내가 헐레벌떡 2층으로 내려왔다. 열쇠를 들고 문 앞으로 다가가자 노파는 손을 내저었다.
"쥔 없는 집에 어치게 혼자 들어가것냐. 초란아. 언능 와서 니가 문 열어라."
사내는 난감하다는 듯 노파의 팔을 잡았다. 그러나 노파도 뭔가 결심한 듯 위태하게 경사진 옥탑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길가에 있던 동네 여자들이 대문 쪽으로 올라오는 듯했다. 승혁은 조심스럽게 2층 계단을 올라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창문을 열었다. 그녀가 옥탑방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러나 계단과 등을 지고 멀리 자그맣게 보이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파가 어렵게 옥탑방 앞에 섰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노파가 그녀의 팔을 잡아도 그저 먼 곳만 바라볼 뿐, 노파를 돌아보지 않았다.
"인자 고만 털어버릴 때도 됐잖여. 간 사람은 갔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제. 언제까지 산송장 맹키로 넋 놓고 있을 것이여?"
"…."
"그려 알어, 니가 어디 정둘 데 없고, 마음 둘 데 없것제. 인자 내가 니 엄니허께. 그때는 성님 죽고 나니께 부아를 못 참어서 너한티 할 말 못할 말 혀서 니가 맴을 다쳤는디, 인자 그럴 일 없을 것이여. 내가 니 바람막이가 되어 줄 텐게 정이라는 것 좀 붙여 봐"
"…."
"아이고 모진 것아 이것아. 젊디젊은 것이 뭐가 아쉬워서 이러고 사냐 응? 저 여편네들처럼 나가서 수다도 떨고 뭐라도 해 볼라고 해야제. 저 어둔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으면 어쩔 것이여? 병원 안 간지도 오래됐제? 우을증인가 뭔가 허는 것이 사람 잡는다고 허드만…. 병원도 소용없는 갑서. 당장 2층으로 내려가자. 니가 느그 엄니가 너 이렇게 살으라고 그 고생한 거 아니여. 그 써글 놈 땜시 느그 엄니가 말년에 고생 좀 했다만, 느그 아부지 살아생전부터 너 하나 잘되기를 바라고 산 느그 엄니 아니냐. 너 이라고 있는 거 느그 엄니가 알면 지하에서도 통곡 헐 거여. 나도 갈 날이 멀지 않았는디, 느그 엄니를 어치케 보것냐. 아야 인자 2층 내려가서 느그 엄니 물건도 좀 정리허고, 치울 것도 좀 치우고 거그서 살자 잉."
"그냥 내 버려두세요. "
그녀는 매몰차게 팔을 뿌리치며 옥탑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노파는 한참 동안 옥탑방을 바라보며 옥상에 있는 평상에 앉아 있었다. 성만이 노파를 부축하고 마당으로 내려왔다. 대문 앞에 모여 있던 여자들도 하나둘 돌아갔는지 밖은 조용했다.
한차례 폭우가 지나간 것 같았다. 승혁은 저녁 7시 수업이지만, 5시쯤 대문을 나섰다. 고샅길을 지나 숲길에 있는 정자에 메모지를 한 장 두고, 조금 큰 돌을 얹어 놓았다. 그 길을 오가는 사람은 그녀와 승혁 이외에 다른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녀가 읽으면 다행이고 읽지 않아도 상관없는 메모였다. 승혁은 그녀가 매일 걸었을 수변을 따라 걸었다. 무수히 많은 생각을 저 물결에 띄워 보냈을 것이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늘 그는 또 한 차례 전쟁을 치러야한다. 몇 명이나 줄었을까. 저녁 수업은 남자들이 많았다. 몇 명의 여자들은 지난 수업 때부터 나오지 않았고, 남자들은 소문이라든가 그의 이야기에 별다른 관심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디에서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올지 모르는 상황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다시 적막에 둘러싸여 있었다. 초란은 무릎에 앉아 있는 탱이를 습관처럼 쓰다듬으며 벽에 기대어 앉았다. 성만이 차려주고 간 밥상이 그대로 뿌연 먼지를 마시며 방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어느새 어둠이 깔리는 시각이었다. 어둠 속에서 초란은 방 입구부터 차근차근 시선을 옮겼다. 1 년 동안 그녀가 살았던 흔적이라고는 없다. 입구에 들어서면 한쪽에 싱크대가 있고, 건너편에 화장실이 있다. 싱크대를 지나면 방문이 있고, 그 방에는 갖가지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방문을 열어 본 기억이 그다지 많지 않다. 방문을 지나 몇 발자국 옮기면 책상이 창문 쪽에 붙어 있었다. 그녀가 방에서 바라 볼 수 있는 유일한 세상. 창밖이었다. 창을 지나면 이부자리가 있다. 방에서 꺼내 놓은 것이 벌써 1년, 몇 번 성만이 와서 이불 빨래를 하고, 새것으로 바꿔 놓았지만, 그녀에게 그다지 의미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이부자리를 펴 본 적도 거의 없었다. 그 벽이 끝나면 욕실 바로 옆에 있는 방이 있었다. 그 방의 창문을 열면 숲길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호수가 보였다. 가끔 옥상을 힐끗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싫을 때는 그 방 뒤에 있는 자그만 뒤 곁에 나가 있었다. 장독대 몇 개가 덩그러니 있고, 성만이 꾸며놓은 작은 탁자가 겨우 들어가는 넓이의 뒤 곁이다. 겨울에는 시린 바람을 정면으로 맞이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벗어나고 싶은 어둠이다. 초란은 봄이 시작되는 길목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봤다. 죽었던 가지에 생명수가 전달되고, 짙은 회색의 가지가 푸른빛을 품기 시작하는 2월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작은 움직임을 보았다. 낯설었다. 그 해답을 찾고 싶었다. 그 꿈틀거리는 욕망. 어둠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이제는 웃고 싶다는 그 낯섦이 그녀를 어둠으로 이끌었다. 아직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다. 어머니의 삶 속으로 그녀가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용기가 없다. 어머니처럼 자신을 불태워 위할 그 누군가가 있다면 달라졌을까. 질긴 목숨 줄을 이어가기 위해 일 해야 하고,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폐지라도 주워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다면 그녀의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굳게 닫혔던 문을 기웃거리는 꿈틀거림은 무엇일까. 신경정신과 의사의 말처럼 그녀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글로 적었다. 그러나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뿐이었다. 처음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시작한 글쓰기는 어느새 자신의 처지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곤 했었다. 그래서 한동안 쓰지 않았다. 그러나 꿈틀거리는 그 정체를 알고 싶었다. 입가에 미소를 엷게나마 짓게 했던 그 존재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소란스러웠던 여자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도 사라졌다. 다들 저녁 하러 들어갔거나, 구경거리가 없어서 들어간 모양이다. 날카로운 시선들이, 그녀의 살점을 떼어내던 시선들이 어느새 동정의 시선으로 바뀌어 있다. 동정의 시선에 숨겨둔 칼날 같은 언어들. 금방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그 시선에 숨은 냉소를 보았다. 아랫집 여자의 수다는 그나마 귀여웠다. 그녀는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잊어버린다. 자신이 했던 말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수다스러움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고요한 움직임 속에 숨어든 살쾡이의 발톱 같은 날카로운 혀의 움직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려오는 혀 차는 소리. 산송장, 살아 있는 시체, 팔자 좋은 년, 배부른 짓, 음흉한 암고양이 등.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말이다.
초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외투를 여미며 운동화를 신었다. 호수의 밤 내음이 그리웠다. 조용히 찰랑거리는 호수의 물소리가 듣고 싶었다. 대문을 열고 고샅길로 접어들어서야 긴 한숨을 내리 쉬며 긴장감을 풀었다. 사람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느긋한 걸음으로 숲길에 접어들 때, 정자에서 펄럭이고 있는 하얀 물체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누군가 일부러 놓은 듯 종이를 돌로 눌러놓았다. 초란은 정자에 앉아 종이를 집어 들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손 글씨였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세 가지의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먼저, 기다릴 줄 아는 용기입니다. 시린 눈보라를 이겨내고 봄을 기다린 생명은 봄에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미움을 받을 수 있는 용기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 중의 누군가는 나를 미워하고, 시기하며, 음해하기도 합니다. 그런 미움을 받고도 흔들리지 않을 용기가 필요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이 전부는 아닙니다. 내가 쌓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첫 시작은 웃음입니다. 아주 작은 것에도 웃을 수 있을 때, 그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웃어요. 작은 미풍에 실려 오는 바람 소리에도 웃어 봐요.'
"미움받을 수 있는 용기,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용기."
초란은 종이를 외투 주머니에 넣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조용한 밤 호수를 걷는 동안, 그녀는 두 문장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기다리는 용기가 아니라 미움 받을 수 있는 용기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다. 외투 주머니에서 구깃거리는 종이의 질감이 느껴졌다. 그 종이의 주인은 궁금해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녀가 어머니께 다녀오는 길에서부터 내내 그녀를 바라보던 시선을 알고 있었다.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던 그 사내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 초란은 마당을 지나 옥탑방으로 오르는 계단의 절반쯤 오르다 2층에 섰다. 어머니 장례식이 끝나고 성만이 유품 정리를 한다며 초란을 끌고 들어갔던 이후, 단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곳. 옥탑방처럼 앞과 뒤 공간이 있고 조금 안쪽에 건물을 세웠다. 1층 건물 위에 2층을 올리고, 2층 옥상과 뒤쪽 공간을 남긴 건물 위에 옥탑방을 올렸다. 2층 평상에서 보면 옥탑방 건물이 보이는 구조. 옥탑방 마당에서 내려다보면 2층 평상에 앉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구조다. 초란은 2층 현관문 앞에 섰다.
아직 어머니의 삶과 마주 설 용기가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닐 때부터 떠났던 집이다. 명절 때도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내려오지 않았고, 어쩌다 한 번 내려오면 눈물부터 흘리는 어머니가 싫었다. 대학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그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흔들리면 혼자 살아가야 할 딸아이가 험한 세상을 만날까 두려운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러는 어머니가 미웠다. 초란이 대학병원의 간호사로 취업한 후, 군산에 내려오지 않았다. 항상 바쁘다는 이유였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보고 싶었던 어머니는 반찬들을 머리에 이고 병원을 찾아왔다. 초라한 몰골이었다. 백발에 짧은 펌머리, 쌀쌀한 초겨울인데 홑껍데기 같은 아주 오래된 꽃무늬 외투, 그리고 펑퍼짐한 고무줄 일 바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손님이 찾아왔다는 연락에 황급히 뛰어 내려오다 마주친 어머니.
"여기까지 뭣 하러 와? 그리고 그 옷차림은 또 뭐고? 지금 장사하러 온 거야? 창피하게 왜 찾아와!"
순간 어머니의 표정은 굳어졌다. 다시 애써 웃으려 표정을 고쳤지만, 어머니의 눈에 고인 눈물을 초란은 애써 외면했다. 어머니는 들고 있던 반찬을 초란의 손에 쥐어주더니 이내 말 한마디 없이 발길을 돌렸다. 초란은 그런 어머니가 창피했다. 그 이후, 그녀가 올라오라는 연락을 하지 않으면 어머니는 그녀의 직장에도, 기숙사에도, 결혼 후 살림집에도 발걸음 한 번 내딛지 않았다. 가끔 전화뿐이었다.

초란은 2층 현관문 문고리를 잡았다. 잠겨 있었다. 그러나 그 잠긴 문을 열 수 있는 용기는 그녀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초란은 평상에 앉았다. 어머니는 이 평상에 몇 번이나 앉았을까. 이곳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명절이면 집집마다 찾아오는 이들을 바라보며 얼마나 외로워했을까. 그 때문이었을까? 어머니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폐지를 줍고, 재활용 쓰레기를 모으고 관리해야 할 건물들을 둘러보고, 반찬가게 들렸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 하루 고작 3시간 새우잠을 자고, 아침은 누군가 건네주는 우유 한 잔으로 끼니를 때우고, 점심은 카페에서 미처 팔지 못하고 남은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저녁에야 겨우 들어와 찬밥에 물 말아서 김치 하나로 하루 식사를 끝냈다던 어머니. 저녁이면 갖가지 반찬을 만들어 반찬가게에 가져다 두고, 다시 거리로 나가 폐지를 줍는 고단한 일상을 자초했다. 어머니의 반찬가게가 있는 건물은 아직 그대로다. 시장 골목에 있는 2층 상가. 아주 오래된 건물로 1층의 반찬가게는 정리만 해두고 비어있는 상태고, 2층에 상가 네 개, 1층에 세 개는 성만이 오가며 관리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직접 장사는 하지 않으셨다. 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으면 잡다한 생각이 들고, 들어오는 손님들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그녀 어머니 생각이었다. 매일 저녁 무렵에 가게에 들러 하루 지나면 팔지 못하는 반찬은 일하는 아주머니들 손에 들려주거나, 걷어다 노인정이나, 보육원 등에 기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장을 들러 새로운 반찬거리를 사서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몸을 혹사해가며 살아야 했던 이유는 단 하나, 초란 때문이었다. 그 이유 이외에 다른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었다.
초란 이외에 자식은 없다. 위로 오빠가 하나 있었지만, 사산이었고, 몇 년 동안 병원을 전전하며 어렵게 임신했고, 태어나서 병약한 탓에 병원이 제 집인 양 드나들었다. 그랬던 탓일까. 어릴 때부터 애지중지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건축업을 하시며 전국을 돌아다닐 때, 집에 있지 않았다. 다른 집 도우미로 나가기도 했고, 식당 일, 건물 청소는 물론이고, 해망동 어판장에서 경매를 받은 물건을 손수레에 싣고 시내에서 떨어져 있는 외진 마을에 팔러 다니기도 했었다. 그녀가 건물을 짓고, 자신의 소유로 된 건물이 몇 채 있는 부잣집 사모님이라는 것을 동네 사람들조차 깜빡깜빡 잊을 정도였다. 누가 봐도 가난하고 배고픈 노파였다.
그런 어머니가 초란은 싫었다. 군산에서 학교에 다닐 때, 거리에서 어머니와 마주치면 외면했다. 학교에서 학부모 상담이 필요할 땐 아버지를 불렀다. 그의 아버지도 초란의 마음을 이해한 것일까. 아니면 아버지도 어머니가 부끄러웠던 것일까. 학부모 상담 시에 항상 그녀의 아버지가 학교를 방문했다. 초란은 어머니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유는 묻지 않았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사고로 죽고, 장례식장에서 처음 알았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나타난 초란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내. 그 낯선 사내가 아버지 영정 앞을 지키고 상주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체를 비롯하여 아버지의 명의로 된 재산은 대부분 그 사내가 휩쓸어서 갔고, 초란의 몫으로 최소한의 상속분만 남았다. 다만 어머니의 명의로 된 재산에 대해서는 그 사내에게 손댈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어머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아픈 손가락은 초란이 아니라, 자신의 호적에도 올리지 못한 아들이라는 것을. 어떤 예감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아버지는 사고가 있기 1년 전에 유언장을 작성했다. 언제 어떻게 생을 마감할지 모르는 현실에서 자신이 죽고 난 후, 오갈 데 없는 초란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초란은 아버지가 밉고 어머니가 싫었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았음에도 당당하지 못한 어머니가 싫었고, 초라한 어머니가 싫었고,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며,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골라 하는 어머니가 죽도록 창피했다. 그런 어머니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제대로 사과도 하지 못했는데, 다정하게 엄마라고 불러본 기억도 없는데, 우렁이처럼 자신의 살을 자식에게 다 내어주고 그렇게 힘없이 사라져버렸다.    

초란은 2층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기는 것 같았다. 누군가 심장에 칼을 꽂고 휘저으면 이토록 고통스러울까. 그녀는 일어나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아직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삶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어머니를 외면해버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엄마는 내가 용서가 돼? 아직도 엄마 한 서린 돈으로 살아가는 나를 용서할 수 있어? 엄마!'
초란의 두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산뜻한 봄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듯 살포시 매만지며 그녀 주변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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