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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화의 문학-소설   창작소설
10여년만에 다시 시작하는 소설입니다.
습작이라서 서툴지만 시간나는대로 꾸준히 써볼 생각이랍니다
작성자 설연화
작성일 2010-09-03 (금) 13:00
홈페이지 http://sichenji.com
ㆍ추천: 0  ㆍ조회: 904      
IP: 220.xxx.26
꽁트 늦게 배운 도둑질
 

<<꽁트>> 늦게 배운 도둑질



“이거 진짜 신기하다. 내가 왜 이걸 모르고 살았지?”



21세기를 살아가면서 컴퓨터와 멀리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창선은 컴퓨터는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다. 군대에서 제대했을 때만 해도, 컴퓨터는 이제 겨우 보급 단계였었다. 취업을 하려면 컴퓨터를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대학 동기들 말에 창선은 컴퓨터 학원을 찾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CPU 286 시대라 모든 명령어는 영문으로 자판을 두들겨 실행해야 했다. 눈으로 확인을 하고 자판을 두들겨야 하고, 명령어를 생각해야 하고, 책을 뒤적거려야 하는 것이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었다.

굵은 손으로 자판을 찾아 외워야 하는 것이 지겹게 느껴졌다. 창선은 학원 수강 보름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급한 성격의 창선은 굵은 손가락으로 그 작은 키보드를 두들기는 것이 영 적성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어먹을 세상, 그냥 말로 하면 자동으로 글씨가 나오는 컴퓨터가 나오지 않는 이상 내가 컴퓨터 배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다짐한 이후로 컴퓨터는 의식적으로 피했던 창선이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며칠 전 아내의 외출이 길어진다는 연락을 받고, 마침 술친구도 찾기 힘든 날이었기에 퇴근을 늦게 했었다. 그때 매일 늦게까지 남아있던 여직원의 컴퓨터에서 본 세상은 창선이 살아가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어려운 자판을 치지 않아도 된다. 서로의 음성으로 대화가 가능했고,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가 가능했다. 뿐이던가! 여직원이 이어폰을 창선의 귀에 꽂아 주었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수의 노래가 아니었다. 하지만 고운 목소리의 여인이었다.

“여자 목소리가 참 이쁘네. 애교도 많고.......”

“그걸 싸운드발이라고 하는데요. 제가 마이크 잡고 하루 종일 이야기 한다 해도 과장님은 제 목소리 모르실거에요. 비슷하다라고는 생각하시겠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싸운드 카드 좋은 걸 구입하려고 난리에요. 싸운드 카드에 따라서 정말 다르거든요”

“그러고 보니 박영주씨 컴퓨터에 대해 많이 아는 모양이네?”

“전혀 몰라요. 다만 여기에서 사람들이 다 알려주거든요”

그렇게 시작된 컴퓨터였다. 그날 바로 그 싸이트에 가입을 하고, 여직원이 퇴근 한 후에도 그 컴퓨터에 앉아 21세기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창선의 책상에는 절대 자리를 하지 않을 줄 알았던 컴퓨터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부장 몰래 헤드셋도 하나 마련해 두었다. 물론 거기에는 박영주의 공이 컸다. 컴퓨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에게 귀여운 유치원생 다루 듯 영주는 작은 것 하나 하나 알려 주고 본인은 집에 가서 할 거라면서 퇴근을 했다.



창선은 집에 가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수 없다. 컴퓨터는 아내의 전유물이며, 창선은 언제까지나 컴맹이었다. 설사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다 해도 어찌 여자들과 숙덕거리며 노는 것을 보여 줄 수 있겠는가. 창선은 집에서는 영원한 컴맹이기로 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닉을 부른다. 하지만 마이크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권한을 부여 받아야 된다고 했다. 창선은 자판에서 글자를 찾아 겨우 대답했다.

“sp"

빌어먹을 영어다. 분명 한글을 입력했는데, 영어로 떴다.

대화창에서는 몇몇 여자 대화명들이 울긋불긋한 색깔의 글씨로 깔깔거리며 웃었다. 글씨로 웃는 것을 보았을 뿐인데, 실제 웃음소리가 창선의 귀에 들려오는 듯 했다.

“ㅋ ㅋ 베리우스님 초보에요?”

“붉은카라님 여기 초보 있어요. 우리 붉은카라님 초보 귀신인데!”

그들의 대화가 얼마나 지났는지 창선은 모른다. 그의 눈과 손은 키보드에서 떠날 줄 모르고, 한 문장을 완성해서 엔터를 쳤다. 하지만 이미 그들의 대화는 다른 주제로 바뀌어 있었다.

“컴퓨터도 초보이고, 노래하는 방도 초보에요”

“ㅎㅎㅎ”

“ㅋㅋㅋㅋㅋ ” 

“ㅍㅎㅎㅎ"

갖가지 웃음들이 하얀 대화창에 가지각색의 색깔로 쏟아져 나왔다. 실제 사람들과 마주 앉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비웃음을 쏟아내는 듯한 느낌에 얼굴이 붉어졌다. 창선은 말없이 울그락 불그락 해진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 그의 대화명을 불렀다. 하지만 창선은 대화창에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느새 베리우스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잊어버린 모양이다. 어느 사내의 대화명이 뜨니 대화의 내용은 모두 그 사내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붉은카라랑 만났다면서요? 어땠어요? 예뻐요?”

“애교 짱, 얼굴 퀸카, 몸매 짱.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죠?”

“하긴 본인 대 놓고 못생겼다고 하겠어요? 그런데 전 전설의탑님 별로였어요. 나이는 어린데 벌써 대머리? 난 대머리는 싫더라.”

붉은카라의 날카로운 말이었다. 사내는 나가버렸고, 그 작은 공간의 사람들은 사내의 험담에 시간 가는 것을 잊어버린 모양이다. 창선은 그들의 대화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끼어들 공간도 없었고, 그들의 대화에 동참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당장 그 컴퓨터 화면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였다. 창선의 컴퓨터화면에 쪽지창이 떴다. 붉은카라였다.

- 마이크 드릴 테니 말로 허셔요. -

커다란 창 위에 자그만 글씨로 자신의 대화명이 떴다. 창선은 목소리를 최대한 저음으로 깔고 차분하게 말하기 위해 마이크를 가까이 가져갔다. 손이 바르르르 떨려왔다. 사람들이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군중 앞에서 마이크 잡은 것처럼 떨렸다.

“반갑습니다. 키보드가 서툴러서 지금 막 키보드 던지려고 했는데, 카라님께서 마이크를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함께 동참하고 싶지만 솥뚜껑 같은 손으로 서툰 자판치는 것이 정말 힘드네요. 이렇게 마이크로 인사라도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선은 하고 싶은 말을 하고서야 겨우 대화창을 볼 수 있었다.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었다.

“목소리 끝내주시네요. 사진도 공개하세요.”

“정말 목소리 분위기 있으시다. 멋져”

“노래도 해주세요.”

창선은 붉은카라 대명을 찾았다. 그러나 이외로 그녀의 반응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 창선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취향이 독특하고 도도한 여자인 것 같았다. 자존심이었다. 노래에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영주가 퇴근 하면서 노래방을 여는 것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창선은 잠시 망설였다.

“아, 여직원이 퇴근하면서 노래방 여는 것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네요. 그냥 반주 없이 노래한곡 해도 되죠?”

창선은 조용하면서도 야심한 밤에 어울릴만한 슬픈 사랑노래를 불렀다. 대화창에는 그야말로 감동의 물결이 파도를 치고 있었다. 앙콜이 쏟아지고, 멋지다. 애인하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 라는 등. 수많은 찬사가 대화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붉은카라는 없었다. 참여자를 확인해보니 붉은카라는 이미 가버리고 없었다.

‘어라? 지가 손 내밀더니 가버려?’



창선은 누군가에게 마이크를 건네주고 다시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날 같으면 왜 늦느냐고 닥달하는 전화를 수십 번도 더 했을 아내에게서도 전화가 없다. 시간은 벌써 1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창선은 아주 긴 시간을 투자해서 퇴근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입력하고 엔터를 쳤다. 그 순간 화면이 바뀌면서 순간이동을 하는 듯 다른 방으로 이동이 되었다.

“어?”

붉은카라였다. 그 방에는 붉은카라와 창선 둘만이 참여자에 있었고, 붉은카라는 섹시한 모습으로 화면에서 방긋 웃고 있었다. 30대 초반이라고 하기엔 너무 여리고 목소리도 귀여웠다. 

“마이크로 말씀 하셔도 되요. 아까 그 방에서 답답하셨죠?”

“아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럼 그렇지. 넌 이제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

창선은 자신 있었다. 남자다운 얼굴. 목소리. 그리고 깔끔한 매너는 결혼 전에도 많은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자신에게 넘어오지 않을 여자는 없다는 그 자신감에 불타는 자신을 느꼈다. 참 너무나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희열이었다. 잊고 있었던 뜨거움이랄까. 무엇이든지 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데 이 늦은 시간까지 이렇게 있으면 남편분한테 혼나지 않으세요?”

“어머? 저 시집보내시는 거에요? 저 혼자에요”

“이혼?”

“아니에요. 미혼인데....... 너무 하세요. 앙 나 삐질래.”

“아 미안해요. 나이 때문에 그만.”

“그런데 어디 사세요? 서울? 부산? 광주?”

“서울 서초동”

“어머 웬일이야. 저 서초동이에요.”

그렇게 동네 이야기부터 시작된 붉은카라와의 대화는 새벽을 달리는 시간에도 멈출 줄 몰랐다. 몇 번인가 창선의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창선은 생각나는 친구의 아버지를 영안실에 모셔야 했다. 부관참시도 아닌데, 창선에 의해 두 번 영안실에 안치되어야 하는 친구 아버님께 잠시 묵념을 드렸다.

“저기 한잔 하고 들어가실래요?”

“이 시간에?”

“아직 퇴근 전 이시잖아요. 어때요?”

“좋아. 어디서 볼까?”

끈적거리는 대화가 오가는 몇 시간만에 둘의 대화법은 달라졌고, 대화의 농도도 지나치다 싶을 만큼 끈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창선은 신선함에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섹시하고 젊은 여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도착할 수 있는 약속장소가 멀게만 느껴졌다. 40대 중반에 느껴보는 아찔함이었다. 매일 서류와 시름하고, 아내의 바가지에 지쳐가고, 아이들의 학원비에 허리가 휠 것 같은 부담감속에서 맛보는 짜릿함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었다.



약속장소를 찾아가는 동안, 창선의 귓가에 붉은카라의 귀여운 목소리가 귓전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예쁘장한 얼굴. 귀여운 목소리. 거기에 캠으로 본 몸매도 군침이 꿀꺽 넘어갈 정도로 섹시했다. 음성을 하면서 몇 번인가 침 넘어가는 소리가 붉은카라에게 들킨 것 같아 무안할 때가 많았다. 약속한 술집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았다. 화상으로 본 그녀는 금방 알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창선은 혹시 그녀를 못 봤을까 싶어 몇 번인가 두리번거렸다. 

구석진 자리에서 누군가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붉은카라 비슷하기도 하지만, 왠지 낯선 얼굴이었다. 더군다나 조금 등치가 있어 보이기도 했다.

-목소리가 실제보다 더 이쁘게 들리는 걸 사운드 발. 얼굴이 더 이쁘게 보이는 걸 캠발. 사진이 실제보다 더 예쁘게 보이는 걸 사진발이라 해요.-

“붉은카라?”

“오빠, 맞아요!”

창선은 자리에 앉았다. 방금 전 컴퓨터 안에서 봤던 것 보다는 조금 실망스럽기는 했다. 평범함에서 조금 이쁜 정도였다. 몸매도 뭐 그럭저럭 봐 줄만은 했다. 창선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오빠도 화면발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거구나?”

“아냐, 실물이 더 이뻐. 목소리도 더 귀엽고.”

“피잇~ 거짓말 인거 아는데 뭐. 기분은 좋으네. 히잇~. 근데 오빠, 시간 별로 없지? 우리 한잔만 하고 그냥 갈까?”

“응? 어딜?”



뜨거운 밤은 어찌 흘렀는지 기억도 할 수 없다. 그녀의 뜨거운 몸이 창선의 몸과 뒤엉켜 몸부림 칠 때, 사방은 고요했고, 들리는 것은 그녀의 신음소리 뿐. 그녀가 내 뱉는 달콤한 속삭임 뿐. 고요한 밤은 창선의 숨소리마저 삼켜버린 듯 그렇게 고요히 밖에서 들어오는 모텔의 네온싸인 불빛만이 그의 존재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거친 숨소리가 멎고, 그녀가 숨을 쉴 때 들썩이는 얇은 홑이불의 들썩임 소리만 들려왔다. 창선은 몸을 일으켰다.

“노래하는 방에서 만난 사람들이랑 항상 이래?”

“오빠 오해 하지 마. 나 이런 거 처음이야. 오빠가 첫눈에 마음에 들었거든.”

“설마.”

“안 믿는구나? 처음인데....... 아까 봤잖아. 나 그 남자랑 커피 한잔 마시고 왔을 뿐이야. 별로 마음에 안 들었는데 3년 쫓아 다녔잖아. 그 남자가. 그래서 만났는데, 같이 앉아 있는 것도 너무 힘 들었는 걸?”

창선은 그녀의 말을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 다가오는 기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창선은 욕실에 들어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남자로서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부진 입술. 짙은 눈썹. 크지는 않지만 쑥 들어가 있어서 강한 인상을 남기는 눈. 거기에 아직은 근육질이라고 할 만큼 다부진 몸.

‘마누라만 날 인정하지 않을 뿐이라고, 아직 나 남자의 매력이 있지!’

창선은 아무것도 거치지 않은 채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아직 침대에서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창선이 주섬주섬 옷을 입고 있을 때, 그녀는 창선의 뒤에서 살포시 끌어안았다.

“나, 오빠 보험 해 줄게. 오빠가 찾으면 언제든지 옆에 있는........”

“정말?”

“피시방도 이쪽으로 옮겨야겠다.”

“피시방?”

“응, 인천에 방이 있는데, 일 때문에 오가는 게 피곤해서 그냥 피시방에서 자고 그래”

“아예 이 근처에 방을 하나 구하지 그래?”

“어머 오빠가 방 구해주는거야?”

“응? 아니, 그런 것이 낫지 않을까 해서.”

“그렇구나. 난 또....... 오빠, 지금 갈 거지?”

“응”

“나 용돈 좀 주고 가. 프리랜서는 돈 있을 때는 많은데, 없을 땐 하나도 없거든. 낼 아침 먹을 돈도 없어.”

“나, 가진 것이 없는데, 나도 마누라한테 용돈 타 쓰는 생활이라. 미안해서 어쩌지?”

창선은 지갑을 열어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5만원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택시비를 뺀 전액이었다. 그녀는 창선이 쥐고 있는 돈을 빤히 바라다보고 있었다.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분을 삭이는 듯한 인상을 창선은 놓치지 않았다.

“왜 적어서 그래?”

“지금 현금이 없는 거구나? 여기 로비에 가면 현금 인출기 있는데.”

“응?”

“내가 가서 찾아올까?”

창선은 당황하며 그녀에게서 한 발자국 뒷걸음쳤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현관문 쪽을 바라보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이럴 때 꼭 사내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있는 현금이며 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내고, 협박을 하년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설마, 그건 아닐 거야’

“뭐해? 카드 줘!”

“카드 사용했다가 걸리면 나 마누라한테 죽어. 그리고 돈을 인출하면 바로 어느 지점에서 얼마 나갔는지 마누라 핸드폰으로 뜨기 때문에 그건 곤란한데?”



창선은 당연히 안 된다는 듯, 지갑을 접에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이럴 때 살며시 여자를 안아주고 달래주면, 속상했던 마음도 풀어질 것이다. 창선은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안아주기 위해 그녀의 벗은 어깨를 살포시 잡아끌었다. 그때였다. 그녀는 창선의 가슴을 힘껏 밀었다. 방심하고 있던 창선은 뒤로 발라당 넘어지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고 벌레 보듯 창선을 바라보더니 이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뭐라 한마디 쏴 붙일 것 같은 표정이었다. 창선은 그녀의 얼굴에서 공포를 느꼈다. 금방이라도 핸드백에서 날카로운 비수라도 꺼낼 것 같은 비장한 표정이었다. 창선은 일어나야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머물렀지만, 몸은 생각과는 반대로 넘어진 상태로 그대로 그녀의 행동만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걸어가다 창선의 다리가 걸리자 발로 힘껏 창선의 발을 걷어차고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고 나가려다 말고 휙 창선을 돌아보았다.



“에잇 씨발, 무슨 거지새끼들만 있나. 야! 거지새끼 주제에 여자 품을 생각을 하냐? 졸라 없는 것들이 있는 척 하고 지랄들이야. 나이 좀 있는 것들은 돈 좀 있을까 했더니. 야 새끼야. 너 아까 뭐랬어? 대기업 과장이라며?”

창선은 카라의 급작스러운 행동에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멍하게 그녀의 돌변한 표정만 바라보다 무의식적인 대답을 했다.

“맞는데?”

“과장이라는 새끼가 겨우 주머니에 푼돈 넣고 다니냐? 너 그 라이브 방에서 한번만 더 꼴 보이면 아주 작살을 내 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목소리도 재수 없는데다가 생긴 것도 아주 짱나게 생긴 게 여자들이 띄워주니 정말 네가 잘나 보이지? 가진 것 없는 것들이 띄워주면  지 잘난 줄 알고 거들먹거리지. 에잇 재수 없으려니까 똑같은 놈을 하루에 두 번이나 보네!”

창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돌변한 그녀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야, 니 마누라가 불쌍하다. 어떻게 사내새끼가 시작하자마자 끝나냐? 너보다 열 살 더 먹은 노인네들도 놀아봤지만, 살다 살다 너처럼 30초에 끝나는 놈은 첨 본다. 니 마누라 궁둥이 아니면 앞으로 여자들 쳐다보지도 마라. 민폐다 알겠냐? 아 씨발! 열 받네! 요즘엔 유통기한 지난 불량품들이 판친다니까!”



그녀는 문을 닫고 가버렸다. 창선은 힘없이 툭 침대에 주저앉아 멍하니 그녀가 나간 출입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꿈일 것이다. 몇 시간 동안 그는 졸고 있는 것이다. 하룻밤 일장춘몽 같은 일이 현실일리는 없었다. 창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뺨을 때려보았다. 아프다. 현실이다.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 그에게 일어난 일들이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다. 정말 너무 오래간만에 찾아 온 설렘이었다. 지쳐있는 일상생활에 탄산수 같은 그녀였다. 은근한 질투도 있었고, 여인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고,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낯선 여인과 육체적 쾌락도 맛보았다. 하지만 일순간 그것이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처럼 그녀는 무수히 많은 욕설들을 퍼부어 대고 가버렸다. 꿈을 꾸는 듯 했다. 거짓말 같은 쾌락의 꿈을 그는 지금 꾸는 듯 했다. 분명 사무실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버렸을 것이다. 창선은 꿈에서도 고통을 느낀다는 어느 소설의 한 대목이 생각이 났다. 꿈일 것이라고 애써 자신의 마음을 달래어 보았다. 그녀가 내뱉었던 무수히 많은 말이 주마등처럼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유통기한 지난 불량품.-

유독 그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단어였다. 이미 품절이 된지 15년이 넘은 물건. 그래서 유통기한도 넘었고, 이제는 아내의 샤워소리만 들려도 겁이 나는 40대의 중반의 샐러리맨. 창선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입문을 열고 나가자 희미한 불빛이 어두운 복도를 겨우 분간할 수 있을 만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내도 나를 유통기한 지난 하나의 물건으로 바라볼까? 이미 쓸모없는 그저 돈 벌어오는 기계쯤일까? 아니다, 돈 벌어오는 기계도 시원치 않아서 그녀도 함께 일하지 않는가.

창선은 무력감으로 모텔을 나섰다. 다가오는 시선들이 모두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집으로 들어가는 것마저 자신이 없다. 아내의 시선이 두렵다. 유통기한 넘긴, 이제는 쓸모없는 물건으로 바라볼 것 같은 아내의 시선이 두렵다. 창선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도시의 하늘에는 별도 잘 보이지 않는다. 달도 없다. 음력으로 그믐인가? 

창선은 차마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영안실에 조문객이 별로 없어 날을 지새워야 할 것 같다는 전화를 해두고 피시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카라를 찾아 피시방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카라는 어느 사내와 단둘이 있다. 그새 어느 사내가 걸려든 모양이다. 모두 카라 같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혼 이후로 느껴보지 못한 그 아찔한 감정은 아직 창선의 가슴에서 꿈틀거리며 숨을 쉬고 있었다. 누군가와 그런 만남을 지속할 수 있다면, 남아 있는 생이 그리 지치고 지루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을 버린다거나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감정의 유희를 즐기고 그게 삶의 활력소가 되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 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지만, 거짓말 같은 꿈을 다시 꿀 수 있다면 더 심한 욕설을 듣는다 해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뿌옇게 날이 밝아 오는 아침.

고요한 피시방 구석진 자리에서는 창선이 또각이는 자판소리만이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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